2009년 06월 15일
새로 장만한 네비에 슬슬 적응이 된다 싶어지면서 여러 새로운 기능을 살짝씩 활용해 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추천'버튼이 표시해주는 길이 아닌, '무료' 혹은 '최단'버튼을 눌러서 듣도 보도 못한 골목길을 가보는 등의 '모험'을 즐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오늘은 30여 키로가 넘는 길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호기심에 '최단'버튼을 눌렀더니 자그마치 3km나 단축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는 아싸~ 기름값 줄었다~를 외치며 길을 나섰다.
그러나...
수 없이 많은 신호등과 정신 없이 바뀌는 좌회전 우회전을 거쳐, 무단 주차되어 있는 차량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하는 '수학적 최단'거리였다. 신호등에 멈춰서고 무단주차 차량 때문에 차선을 바꿀 때마다, 내 생체짜증측정기는 '최장 거리'임을 알리는 싸이렌을 마구 울려왔다. 즉, 짜증이 순간 순간 터져주시더라는 거다. -_- ;;
결과적으로 기름이 줄었을리 만무하고, 시간도 적게 들었을리 없다.
아무튼, 알 수 없는 골목길을 다니는 것이 순간순간 짜증을 낳기는 했지만,
그닥 재미 없지만은 않았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길을 탐험하는 기분도 든달까. ㅎㅎ
특히나 내가 오늘 다닌 길은 서울 도시 한복판이 아닌 경기도에서도 아주 살짝 외곽지역이었다. 즉, 도시에서와는 다른 많은 경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네비에 제법 익숙해졌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최단거리 버튼을 누르고 길을 나섰는데, 아차 하는 사이 골목 하나를 잘못 들어서 버렸다.
'이~ #$%^&*^%@#$%~같은 네뷔쉐이 가트니라구!!!!'
그러나 길치인 내가 어찌하리오! 다시 네비를 바로볼 수 밖에. 그런데 문제는, 다른 경우라면 단순히 유턴 한번 하면 될 일이었을텐데, 어쩐지 네비는 우회길을 선착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이쪽으로도 갈 수 있다는 거야? 어떤 길일까나?'
그렇게 나는 알아서 유턴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네비의 안내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간은 넉넉하기만 했고, 마음은 경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에 맞춰 날씨는 바캉스라도 떠나야 할 듯 뜨겁고 맑기 그지 없었으며, 녹음은 푸르렀다. 마침 우회도로는 데이트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가로수길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곳이었고, 앞뒤로 보이는 차도 별로 없을 만큼 한적했다. 급기야는 동네 사람 아니면 다니지도 않을만한 시골길이 소개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려서 놀러갔던 시골 친척집이라거나, 친구들과 아이스박스 가득 먹을 것을 짊어지고 어느 계곡이라는 곳으로 놀러갔던 바캉스가 떠오를 만한 그런 길이었다. 그렇게 일이건 뭐건 모두 까맣게 잊어버리고, 꿈 속이라도 헤매는 듯 넋을 잃기 시작할 즈음
다시 대로가 나타나고 목적지가 코앞에 다가왔다.
지금도 오늘 드라이브 길의 즐거움이 잊혀지지 않는다. 잘못된 길에 들어선 첫 순간의 짜증과 약속 시간에 행여라도 늦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은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오히려 다음번에도 그 길을 가주고 싶은데, 어느 즈음에서 잘못된 길을 선택해 주었던지 하도 골목골목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할 뿐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길을 잘못 들어서서 이제 더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이게 벼랑 끝이고, 어느 틈에 몰려오는 폭풍에 그 벼랑에서 떨어져 버리기 까지 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떨어지고 보니 끝이 아니라 바다라는 또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더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자 이제, 인어가 되버리는 거다.
마음껏 헤엄쳐 보자.
육지 것들이 꿈꾸는 해저도시가 지금 바로 내 손에 있다는 거다. 음하하~!
# by Annika | 2009/06/15 22:44 | N e i t h e r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