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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다녀 오신걸까

울 집에서 올해의 가장 큰 이벤트는 바로 울 아버지의 환갑생신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카는 벌써 2년 전부터 이 때를 준비하야 적금까정 들었었다. 아니, 사실은 적금은 아니고 적금 붙듯이 돈을 모아왔다. 난생 처음 나도 효도라는 명목하에 뭔가 폼나는 생색을 내보리라 마음 먹었고, 그것은 여행이라도 종목으로 결정지어졌다.
여행을 보내드리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줄때 좋다고 조용히 받으시는 분들이 없듯이, 보내드린다고 조용히 신나서 떠나실 턱이 없었던 것이다.

안간다니까 왜 자꾸 그러니? 돈 아깝지 않아? 왜 해외까지 나가서 돈을 뿌리고 와!
이런 우리나라 경제를 걱정하시는 깊고 깊은 뜻을 끝까지 져버리지 않으시며, 나를 매국노 쯤으로 격하시키기 시작하시는 것이었다. -_- ;;;
급기야...

그럼 좋아. 그 돈 그냥 우리 줘라. 우리나라 한바퀴 돌란다.
정말 여행을 가시기나 한다면 진짜 그냥 돈으로 드린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돈이 부모님 주머니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 집 쌀독은 그득 차올라 동네 생쥐들만 포식할 일이 생길 것이며 일년에 몇 번 못 먹는다는 소고기국이 밥상에 올라 앉으리라는 사실을...
내가 미쳤어?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렇게 생색도 나지 않는 데다 써버리게 그냥 놔둔데요?
내가 모를 줄 알구? 어른들이 뭔 재미로 사는지 나도 좀 안단 말이지~!

라면서 아니카의 원맨쇼가 시작되었다.

아니카 1(아버지 친구라는 설정) : 아니, 자네는 한동안 연락도 안되던데,
            어디 갔었나?
아니카 2(울 아버지라는 설정) : 아니 뭐, 애가 어딜 좀 가라고 하도 성화를 부려서.
아니카 1 : 어디? 어딜 가랬길래 그래?
아니카 2 : 아니 뭐... 환갑이라나 해서... 요즘 누가 환갑을 챙긴다고 ...
              여행을 가라고 하도 귀찮게 굴어서.
아니카 1 : 아이구! 좋은 데 갔다 왔나 보네. 어디 갔었나, 어디?
아니카 2 : 아니 그냥 여기 가까운데...
아니카 1 : 가까운데 어디? 일본? 중국?
아니카 2 : 아니 뭐, 호주를 끊어놨더라구.
아니카 1 : 아이구~ 효녀뒀네. 요즘 누가 환갑에 그런데까지 보내준데.
              자식 농사 잘 지었어. 좋겠구만. 허허~ 부럽네 그려.
아니카 2 : 아니 뭐... 피곤만 하구 뭐.

식사드시다 말고 어머니 아버지가 웃음통이 터져버리셨다.


거봐, 나도 뻔히 다 안단 말이지. 그니까 보내드릴 때 재미나게 다녀오세요. 이제 지나면 내가 또 언제 보내드릴 수 있는지 나도 모른단 말예요.

다음날이었던가? 무조건 돈 다 넣고 예약 걸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제서야 조용히 받아들이시는 눈치였다. (사실은 언제든지 전액 환불이 가능한 예약금만이 걸린 상태였다.) 물론 끝까지 '싫다니까 거 되게 귀찮게 하네.'라는 인삿말을 잊지 않으시더라. 그리고는 소리 없이 만반의 준비에 들어가시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0-

출발일이 다가오고 이것 저것 자잘한 준비를 도와드린 뒤, 혹시라도 '내가 안온대니까 니가 억지로 보내가지구~'하면서 국제전화라도 걸려오면 어쩌나 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런데, 떠나신 뒤로, 아예 전화 한통화 없으시더라. -_- ;;;

어제 돌아오셨다. 잘 다녀오셨냐니까 좋았다고 얼굴빛이 밝으시다. 물론 햇볕에 까맣게 그을리셨음에도 말이다.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항구가 얼마나 멋지던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셨다는 것과, 샌드보드가 너무 재밌어서 우겨서 한번 더 탔다는 것 등 얘기꺼리가 한보따리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즐겁기만 했다.


오늘은 집에 들어오니 내 방에 뭔가가 놓여져 있었다.




처음엔 뭔지 못알아 봤는데, 뒤적거려보니 숄더백이었다. 여행가셔서 사오신 선물인것 같은데, 사실 내 스타일이랑 살짝~ 상당히~ 안맞아주신다. -_- ;;;
어디다 쓸까 싶어 잠시 뒤적거리다 보니



MADE IN



THAILAND
-┏
 
울 어무이 아부지는...
대체...
어딜 다녀오신걸까.
 

by Annika | 2007/03/13 23:24 | NonFiction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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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누피 at 2007/03/13 23:52
차이나가 아닌것이 다행인듯,,,
원래 다 인생이 그런거 아니겠수??
나두 프랑스갔을때 급하게 자명종 시계한개 샀더니,,, 메이드 인 차이나,,,
그후로 꼭 어디서 만들었나 확인한다는,,,ㅋㅋ
Commented by itsme at 2007/03/14 00:52
저도 일본에서 이것저것 사왔는데 메이드 인 코리아-_-;;

저 가방 제가 태국 갔다가 과외 하는 애 선물로 사간 거랑 거의 비슷하네요. 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 상품 중 하나인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이것저것 자잘한 물건들 잘 넣어가지고 다니더라구요~
Commented by Wingyㅋㅋ at 2007/03/14 07:50
호주 갔다 오셨겠죠~ㅎㅎ
저희 아부지는 일전에 미국 갔다 오시면서 모자를 사오셨는데
그게 글쎄, '메이드 인..오스트리아'더라구요 -_-;;;
Commented by Lane at 2007/03/14 09:02
효녀시네요.
저희 어머님은 올해 칠순이십니다.
물론 환갑은 그냥 넘어갔고... (-_-)ㅋ
올해는 형,형수,조카,저,마눌,예지,어무이 이렇게 모든 식구가 다 같이 제주도에 다녀 오기로 약속을 했죠.
작년부터 약속을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움직이는 쪽수가 많다보니 시간이 잘 맞춰질런지가 문제네요.

어쨌거나, 우리집의 꼬맹이 아가씨도 울 와이프 친구가 호주에 갔다가 호주의 상징인 캥거루 인형을 선물로 사온걸 받았는데...
마데 인 치나 더군요.
Commented by 가인 at 2007/03/14 09:46
하하하 Annika님 멋지신걸요. 저도 부모님이 은퇴하시면 여행선물 생각해봐야겠어요. ^ ^
Commented by 191970 at 2007/03/14 09:53
잘 하셨어요! 멋지네요. 어른들이 사양하고 싫다고 하시는 거 곧이곧대로 들으면 정말 나중에 피해가 크죠-_- 당신들도 섭섭해하시는 거 말할 것도 없고. 호주라니. 좋으셨겠어요. 저도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Commented by 효겸 at 2007/03/14 16:07
얼마전 부모님 일본 온천여행 보내드릴려고 재원을 조성했었으나... 일정에 차질이 생겨(아버지가 시간이 안나셔서) 현재 재태크(?) 중입니다. 좀더 불려서 호주를 보내드려도 좋을 듯 싶군요... ^^
Commented by 紅蓮 at 2007/03/14 19:18
와~ 멋있으세요!! 저는 심지어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_-;;도 겪어봤다는..
Commented by Annika at 2007/03/14 23:28
스누피> 넌 속은 거야. 방배동 프랑스인 마을 처럼, 사실은 중국속 프랑스인 마을에 버려졌다 온 거였던 거야~~!!!

itsme> 저도 어디에 쓸지 생각이 나버렸어요. 너무 유용한 용도로 생각이 나서 심장이 콩닥거릴 정도예요. >.<

윙이> 예전에 이종사촌 오빠가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다녀와서는 돌하루방을 사왔더라고 이모가 황당해 하시던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ㅋ~

오솔길> 저도 이 돈으로 온 가족이 여행갈 곳을 생각안해 본 것이 아니었는데, 시간도 안맞고 3월이 엄청 싼 비수기더라구요. 그래서 동생이랑 제가 꾹 참고 부모님께 몰아드렸습니다. 저희도 칠순 때는 온 가족이 함께 떠나봐야지 싶어요.

가인 > 돈 땜에 덜덜 떠시더니 당장 다녀오셔서는 너무 좋아하시네요. 이걸로 한 일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실테죠? 사실 어른들은 그게 더 큰 선물거리인 것 같더라구요.

191970> 사실 여러분들께서 칭찬해줄 실 것 같기는 했지만, 막상 받으니 기분 진짜 좋네요. 아~ 유치한 아니카는 언제 철이 들까요. ^^;;

효겸> 저도 당장 알아보기 시작할 때는 일정 맞추느라고 힘들었는데, 막상 질러 버리니까 부모님이 거기에 맞춰버리시더군요. 운이 좋았죠. 저는 다음 칠순 때 온 가족이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자고 하고 싶네요.

홍련> 오~ 인도네시아. 새로워요. ㅎㅎ
Commented by Amelie at 2007/03/15 18:04
아니카님도 부모님도 너무너무 귀여우셔요^^
Commented by Annika at 2007/03/15 22:46
Amelie> 허허~ 귀여울 것 까지야... 제가 저리 좋다고 써놔서 그렇지, 사실 사람 사는 모양새는 다른 범인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지지고 볶는 모양새일 따름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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